
- 기뻐하고 기뻐하리라(1: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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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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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시위대 안과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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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으로 말미암아 주 안에서 신뢰함으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하게 되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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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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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 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증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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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 그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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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된다면(1: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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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 이것이 너희의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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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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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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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락맘
2015.09.02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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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토로
2015.09.02 06:38
너무 우리교회, 우리교회 하는 것이 투기와 분쟁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고 바울에게 괴로운 일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봅니다.
21절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는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을 떠오르게 합니다. 오직 예수님이 살고 나를 죽이는 것이 공동체의 영역을 점점 넓혀갈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세상으로부터 좋지 못한 소리를 듣고 있는 많은 교회들을 창피해 하거나 같이 비판하기 보다는 회개하고 기도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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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
2015.09.02 15:49
18절, 21절. 바울이 자기의 매임을 기뻐하고 유익이라고 말하는 모습에서 십자가를 앞두신 예수님이 십자가 희생을 영광으로 표현하시는 것이생각이 났습니다. 우리는 고난때문에 주를 사랑하고 따르는 것을 꺼려합니다. 인생을 살면서 헛된고생들을 많이 하면서도 영광이 따르는 주를 위한 고난을 피하려고 합니다. 아마도 주의 영광을 알지 못해서인 것같습니다. 몰라서 피하고 얻지못하는 악순환을 깨야하는 것같습니다. 제가 져볼수 있는 작은 십자가 하나를 찾아 보렵니다. 나중엔 주님이 맡기시는 십자가를 감당할수 있는 근력을 키울수 있는 첫걸음을 걷도록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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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현
2015.09.04 07:16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자신이 감옥에 가게 된 일이 복음의 진보를 가져 왔다고 말합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부정적인 일이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면 긍정적인 일이라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그는 가식으로 복음이 전파되던, 진실로 전파되던, 전달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것으로 기뻐한다고 말합니다. 저는 이런 사도 바울의 태도에서 많은 것을 느낍니다. 요즘 한국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 많은 지탄을 받고 있습니다. 신문 지상에 오르내리는 기사들을 보면, 많은 경우 목회자, 장로, 기독교인들이 부정적인 사건들에 연루되어 있고, 그것이 그대로 미디어에 소개됩니다. 저도 그런 사건들을 접하면서 제 안에도 부정적인 인식이 서서히 자리잡는 것 같습니다. 과거에는 목사님이라고 하면 무조건 그분의 인격과 성품을 신뢰하였지만, 요즘은 목사님들을 생각하면서 “혹시 이 분도…” 이런 의구심을 먼저 갖고 대하는 저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 부정적인 시각으로 목회자를 보니까 자꾸 그런 부정적인 면만 확대되어 보이고, 더 나아가 긍정적인 면까지도 부정적으로 해석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봅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죄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저는 그런 저의 모습을 회개하려고 합니다. 물론 목회자들 중에서는 오늘 빌립보서에서처럼 오직 자신의 욕심과 사리사욕을 위해서 목회와 복음 전도를 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당연히 그런 태도로는 하나님 앞에 인정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설령 본인은 자기의 욕망을 위해서 복음으로 포장한 성공을 추구하며 목회를 했다고 해도, 하나님은 속지 않으시고, 그 일을 통해서도 궁극적으로 복음이 전파되는 일로 열매는 맺으시는 분이십니다. 저는 그 하나님을 바라봐야 하겠습니다. 신문 지상에 오르내리는 목사님이 진짜 목사님인가, 가짜 목사님인가, 이런 것을 구별하는 일에 너무 많은 에너지와 시간 허비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냥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은혜에 만족하며, 제가 몸담은 퍼듀제자교회에서 저의 책임을 다하려고 합니다. 한국교회가 어떻게 될지 너무 걱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말씀에서처럼 어떤 방식으로든 그리스도가 전파되도록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인간이 생각하는 것을 뛰어넘습니다. 그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저에게 맡겨주신 사역에 최선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오직 예수만이 전파되면 그것으로 기뻐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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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나에게 괴로움을 더하기 위해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일이 있다면 어떤 경우일까? 생각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혹시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일을 바울이 갇힌 사이에 더 많이 하고 싶었던것일까요? 이렇다면 바울이 기뻐하는 것이 당연하겠다라고 생각하다가, 경쟁이라는 것이 사람을 어떻게 현혹시키는가를 돌이켜보면 그렇다고 해도, 바울의 이런 안목은 가식과 진실 너머에서 진행되는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볼 수 있도록 깊고 긴 훈련을 거쳐야 가능하겠단 생각이 듭니다. 문득 드는 생각은, 저의 성과를 생각할 때나, 딸을 키울 때에도 경쟁과 비교를 내려놓지 못하고 조급한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특히 딸에 대해서는 기대라는 미명 아래 '남보다, 남보다'라는 마음을 감춰두고 마치 그런 것 없는 척 할 때가 있습니다. 결국 모두가 다 공동체 안에 있고 서로 도우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고, 지체들을 격려하고 사랑하며 성장과 성숙을 진심으로 기뻐하는 마음을 다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