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찬양 (새 312, 통 341)
오늘의 말씀
1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18 This is how the birth of Jesus Christ came about: His mother Mary was pledged to be married to Joseph, but before they came together, she was found to be with child through the Holy Spirit.
19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19 Because Joseph her husband was a righteous man and did not want to expose her to public disgrace, he had in mind to divorce her quietly.
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20 But after he had considered this, an angel of the Lord appeared to him in a dream and said, 'Joseph son of David, do not be afraid to take Mary home as your wife, because what is conceived in her is from the Holy Spirit.
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21 She will give birth to a son, and you are to give him the name Jesus, because he will save his people from their sins.'
22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22 All this took place to fulfill what the Lord had said through the prophet:
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23 'The virgin will be with child and will give birth to a son, and they will call him Immanuel'-which means, 'God with us.'
24 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
24 When Joseph woke up, he did what the angel of the Lord had commanded him and took Mary home as his wife.
25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25 But he had no union with her until she gave birth to a son. And he gave him the name Jes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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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만위해
2016.01.05 04:39
추천:3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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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형
2016.01.05 07:42
연말에 집에서 가족이 다 함께 "백투더퓨쳐"영화 3편을 모두 보게 되었습니다. 한꺼번에 영화 3편을 모두 보면서 사람들이 왜 이 영화를 그토록 좋아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현재로서는 가능하지 않은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상상력을 가질 수 있고, 과거 현재 미래를 이어주는 장면들과 그 장면 사건의 변화가 현재 미래를 바꾸기도 하고 그곳에 쓰인 복선과 암시들이 속편을 기다리게 했던 것 같습니다.
1년 전부터 구약, 신약 성경 QT를 하고 제자훈련을 하면서 드는 생각이, 성경도 곳곳에 나와 있는 복선, 암시, 계시, 이들의 완성들로 이루어져 있고 하나님께서 구약의 사건들과 신약의 예수님의 행적과 말씀들의 연결을 통해 더욱더 의미가 있도록 하신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것을 알아가면서 재미를 느끼게 되고 영화 속편을 기다리듯이 우리의 삶 속에서 나타나실 하나님의 역사를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 중 23절 말씀은 이사야 7장 14절에 나와 있는 내용으로 당시에 메시야를 예언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씀은 아니었지만, 사람의 관점에서 불가능한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징표로 쓰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구약의 내용을 보면, 예수님의 탄생과정은 인간의 관점에서 과학으로 설명하려고 노력하는 것보다는 구약에서처럼 그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기에 임마누엘,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그 징표로 받아들이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자체가 징표이며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더이상의 징표가 필요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부활 사건을 사건, 이벤트로만 생각하기 보다는 오늘 하루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하기를 원하셔서 이 땅에 직접 오신 하나님의 마음을 묵상하는 하루가 되길 원합니다.추천:2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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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
2016.01.05 09:37
요셉이 의로운 사람이라 가만히 끊고자하였다... 이 말씀으로 요셉의 이미지가 자비롭고 관대하고...등등으로 해석하는 것을 많이 들었다. 그래 뭐가 나아도 좀 낫겠지 하며 그의 심성의 우월성을 인정하는 동시에 나의 평범성을 고백하며 믿음의 행동을 용기있게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근본적인 바리케이트를 치는 것이다. 그런데 의롭다는 말은 율법을 준수한다는 뜻이라고 몇주전 목사님께서 설교하신 것이 기억나면서 뭔가 좀더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주석을 찾아 보았더니 그는 율법을 엄격히 준수하려 하지도 않았고, 사가랴나 엘리사벳같은 사람들의 말도 듣지 않았고 결국 특별한 이유를 명시하지 않은채 이혼이라는 상태로 마리아를 남겨놓으려했고, 구약의 메시야예언에 귀기울이지 않은, 전혀 선하지 않은 행동을 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너무 깜짝 놀랐다. 피상적인 수준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고 현실에 적용하려는 태도가 얼마나 파괴적이 될수 있는가... 기도가 부족하다는 변명을 자주 했던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강력하게 개입하셔서 부족한 사람을 바로 세우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한다. 요셉에게 하셨듯 하나님은 카파람바노로 나를 붙드시니 정말 감사하다.(http://biblehub.com/commentaries/matthew/1-19.htm의 벤슨 주석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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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형
2016.01.05 11:29
요셉의 행동을 이해하려면, 예수님께서 오실 때의 유대의 결혼제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당시 요셉과 마리아는 정혼상태였으며, 통상 정혼한 뒤 약 1년 후 결혼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비록 정혼 과정일지라도 정혼이 깨어지면, 이혼과 동일하게 취급을 하였다고 합니다.
이 당시, 다른 사람과의 관계로 아이를 잉태하게 되면 여자에게 이혼증서를 주거나(신명기 24:1), 돌로 치는 것(신명기 22:20-24)이 관습이었다고 합니다. 19절에서 말하는 "그를 드러내지"에 해당하는 것이 성문장로들에게 가서 순결을 증명하거나 돌로 치는 과정(신명기 22:20-24)에 해당되는 것이고, 요셉은 그 대신에 마리아에게 이혼증서를 줘서 돌려보내려고 (신명기 24:1)한 것입니다.제가 다시 말씀하신 주석을 읽고 이해한 바로는 우리가 "의(just, righteous)"를 율법을 지키는 것이라고 정의를 내리면, 즉 통상 구약에서 정의하는 것처럼, 율법을 모두 원리원칙대로 적극적으로 다 지키고자 하는 "드러내는" 과정을 거쳤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표현한 "의"는 좋은 마음을 지닌, 자비로운(good-natured, merciful, and tender-hearted)에 가까운 말로 소극적으로 조용히 끊고자 했다는 것입니다. 요셉이 이 결심을 내렸을 때, 마리아는 성령으로 임신한 사실을 천사를 통해 이미 알고 있었고 반면 요셉은 20절 시점에 닿아서 알게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결심을 내린 요셉도 당연히 좋게 평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작년 생명의 삶 교재 한편에 아마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펄벅"여사의 딸이 중국선교사로 오래동안 일하면서 느낀 한자"의"에 대한 글이 떠오릅니다. 한자 의는 "양양"자가 "나아"위에 있는 것으로 예수님이 길잃은 어린양을 지고 돌아오시는 모습을 연상시킨다고 했던 글이 생각났습니다. 신명기를 대표로 하는 유대율법을 문자 그대로만 지키고 율법의 근간인 길잃은 한마리의 어린양을 구해 돌아오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잃고 살았던 유대백성을 답답해 하셨던 것이 하나님께서 직접 이땅에 오신 또하나의 이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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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
2016.01.05 12:05
마리아의 성품도 알고 이야기도 듣고, 예언도 알고, 사가랴나 엘리사벳의 이야기도 들었지만 천사가 알려주지 않았다면 요셉이 이혼을 했을거라 생각합니다. 요셉이 좋은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의를 이룰수 없다는 것이 요점이었는데 정확히 해석하지 않고 요셉을 너무 나쁘게 표현했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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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형
2016.01.05 13:08
아, 제가 주석에 그 부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요즈음 성경을 읽다가 ‘만약에 내가 그곳에 있었으면 나는 어떻게 행동을 했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직접 본 사람들이 하나님을 잊어 버리고 죄를 짓는 모습을 말씀 속에서 볼 때, 예전에는 ‘아 사람들이 왜 이리 미련할까?’ 생각을 하면서 그들을 비판했지만, 지금은 내가 그곳에 있었으면 나도 그들처럼 행동하지 않았을까 하는 두려운(?) 생각을 하곤합니다.
오늘 말씀에 요셉이 처녀 마리아가 임신한 것에 대한 행동이 나옵니다. 마리아가 수치를 당하지 않게 조용히 파혼을 하려고 했던것과 천사가 꿈에 나타난 후에 그대로 마리아를 받아들인 행동은 어떻게 보면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쉽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남존여비 사상이 찐했고 간음을 하면 돌에 맞아 죽을 수 있었던 그 시대를 생각하면 내가 그 상황에서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는 그리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일은 결코 아닙니다.
말씀에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렇기에 그렇게 행동을 할 수 있었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 아침에 나는 의로운 사람인가 생각하면 의의 “ㅇ”자도 감당할 수 없는, 한없이 부족한 제 모습을 봅니다. 남들의 잘못을 쉽게 판단하고 입만 살아서 행동없이 말만 하는 것 보다는 이름 없이 빛도 없이 항상 감사하면서 남들의 상황을 이해해 주고 남들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도록 항상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양하는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